오래된 나무가 들려주는 시간의 철학은 내가 도시의 속도에 지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감각이다. 그 철학은 말이 없고 설명이 없지만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무엇을 말하려는 듯한 울림을 준다. 나는 종종 수백 년 된 나무 앞에 서면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게 된다. 나이테와 옹이, 꺾인 가지와 굽은 줄기 하나하나가 마치 시간을 조각해놓은 듯하다. 이 글은 그런 오래된 나무들이 말없이 전하는 시간의 감각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철학적 통찰에 대해 기록하고자 한다.
1.오래됨이 주는 존재의 신뢰감
내가 처음 오래된 나무 앞에 서본 건 강원도 인제 백담사로 향하던 길목이었다. 계곡 옆 산길에 우뚝 선 느티나무 한 그루는 마치 사찰의 문지기처럼 보였다. 줄기 둘레만 해도 세 사람이 팔을 벌려야 겨우 닿을 정도였고 가지는 제멋대로 뻗어 있었지만 어떤 불균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앞에 서자 나도 모르게 속도가 느려졌다.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마음속 말들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오래된 것에 본능적으로 신뢰를 느낀다. 단단한 벽돌 건물, 빛바랜 책장, 그리고 수백 년을 산 나무까지. 그것들은 버텨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에게 위로를 준다. 오래된 나무가 말하는 건 '지나간 시간도 지금의 무게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조용한 메시지가 늘 진실하게 느껴진다.
생물학적으로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속도는 느려지지만 생존력은 높아진다. 이는 단순히 생존의 전략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급속하게 자라던 시기를 지나 자신의 리듬을 터득한 나무는 천천히, 그러나 확고하게 그 자리를 채운다. 오래됨이란 그래서 단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의 깊이다.
나도 언젠가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천천히 깊어지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나무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2.나이테가 기록한 비가시적 시간
나무의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나이테를 세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이테가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시간의 감정을 기록한 일기장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한 번은 생태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무 단면을 관찰한 적이 있다. 그 나무는 50년 된 참나무였고 단면을 들여다보니 어떤 해는 나이테 간격이 넓고 어떤 해는 좁았다. 아이들이 이유를 묻자 생태 해설사는 이렇게 말했다. 해가 좋고 비가 알맞게 온 해는 넓게 자라고 가뭄이 들거나 병이 나면 좁게 자라요. 나무도 해마다 기분이 다른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아이들 모두 조용해졌다. 나는 그 순간 나무가 단지 살아있는 식물이 아니라 시간을 저장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다시 감탄했다.
인간은 날짜와 시간을 숫자로 기록하지만 나무는 그것을 몸으로 감각해낸다. 나이테는 단순한 지표가 아니라 지낸 시간의 질을 드러내는 구조다. 그래서 어떤 나무는 같은 나이인데도 더 두껍고 단단하며 어떤 나무는 마른 체형을 유지한다.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신만의 시간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종종 나의 지난 시기들을 떠올릴 때 나이테처럼 기억을 감각의 층위로 구분해본다. 기쁨이 많았던 해는 부드럽고 따뜻하게 고통의 해는 질감이 조이고 얇게 남아 있는 느낌이다. 이런 방식으로 기억을 구성하는 것이 인간에게도 필요하다고 느낀다. 숫자가 아닌 감각으로 시간을 바라보는 태도, 그것이 나무가 전하는 시간 철학의 핵심 중 하나다.
3.뿌리와 가지의 방향이 말하는 삶의 태도
오래된 나무를 자세히 보면 그 형태는 정답이 없다. 가지는 비대칭으로 뻗고 일부는 꺾여 있으며 위로 자란 줄기도 있지만 옆으로만 퍼진 줄기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것들은 하나의 균형을 이룬다. 균형이란 모든 것이 똑같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자라며 마당 한편에 서 있던 감나무를 매일같이 보았다. 그 나무는 한쪽으로만 가지가 자라 있었다. 그 반대편은 바위가 있어 자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비대칭의 구조는 그 나무만의 개성이었고 가을이 되면 편중된 가지 쪽으로 주황빛 감이 수십 개씩 달렸다. 나는 그 나무를 보며 ‘모두가 고르게 자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오래된 나무의 뿌리는 깊이 내리는 대신 옆으로도 넓게 퍼진다. 그것은 바람과 비를 버티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지만 공간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뿌리는 단단한 바위를 만나면 그 길을 피해가며 자라고 물을 만나면 머물 줄 안다. 나는 이 유연함 속에서 진정한 지혜를 본다.
삶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정면으로 돌파하려 하기보다, 환경을 감지하고 흐름을 바꾸며 때론 멈추는 것이 필요한 시간들이 있다. 오래된 나무는 그런 삶의 태도를 몸으로 가르쳐준다. 그것은 철학책보다 더 오래 남는 교훈이다.
4.나무가 알려주는 인간의 시간 감각
우리는 보통 시간을 선형적으로 인식한다.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나아가는 방식. 그러나 나무는 순환적 시간을 살아간다. 매년 잎이 돋고 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다시 겨울을 맞는다. 그 반복 속에서 나무는 늙어가지만 동시에 새로워진다. 나는 이런 순환의 리듬이 인간에게도 더 필요하다고 믿는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이 순환적 감각은 위로가 된다. 더 이상 성장을 성과로만 재지 않게 되고 반복 속의 깊이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한 해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숫자보다 감정으로 돌아보게 되고 다음 해를 계획하기보다는 맞이하는 자세로 기다리게 된다. 나무처럼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오래된 나무를 찾는다. 남산 산책길, 경복궁 뒤편, 선유도 공원에도 그런 나무들이 있다. 그 앞에서 나는 늘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시간이 너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대답은 나무의 몸에 모두 적혀 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질문을 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 말하지 않아도 서 있기만 해도 시간이 나를 증명해주는 존재로.